동·단·소 #11 선이 단비님을 소개합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평범한 직장인인데 페미니스트이고 성소수자 앨라이면서 환경주의자입니다. 엄청난 내향인이라서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힘든데 사회운동은 하고 싶어서 고민이 많아요. 또 공감을 잘 못해서 이런 제가 사회운동을 하는 게 맞는 걸까 많이 고민했었어요. 부당한 일을 당한 분들의 고통에 공감해 진심으로 슬퍼하면서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서 별로 슬프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는 저는 위선자인가 싶었어요.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 누구도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에요. 다 함께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싶지만 제 옆에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모순덩어리인 저를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다양한 사회운동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발을 들이게 되셨나요?
사실 어릴 때부터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생 때부터 개인적으로 집회에도 몇 번 갔었어요. 하지만 너무 예민하고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운동권에 들어갈 수는 없었어요. 그렇게 거리를 두고 있는 동안에도 "너 페미야?"가 욕으로 사용될 정도로 여성혐오가 심해지고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트랜스젠더 혐오가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많이 힘들었는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성소수자 단체를 검색해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 가입했어요. 젠더권 운동이 여성운동과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아우른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직접 나와서 활동할 생각은 없었고 저 대신 활동해 주실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후원금만 보내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행성인에서 저같이 예민한 사람도 참여할 수 있는 평등한 모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주셔서 모임에도 조금씩 나가보고 집회 등 여러 활동에도 따라 나가다 보니 할 만한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따라다니다 보니 다른 운동에도 관심이 가더라고요.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한국여성민우회, 플랫폼c 등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고, 이제는 기후정의동맹에도 가입했어요.
제가 나이가 들어서 유해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기후동행카드를 기후정의카드라고 하고 영화 3670을 7942라고 하고 같이 활동하는 분들의 성정체성을 까먹어서 다시 물어보는 등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도움이 많이 필요한 상태가 되니까 저도 어느 정도 관대해지더라고요.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사람이나 저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 사람이 그렇게 된 맥락을 보게 되더라고요. 저도 흠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웬만하면 같이 있을 수 있고 지금 함께할 수 없어도 언젠가는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됐어요. 사회운동을 하다가 상처받는 일이 있어도 이 활동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러시군요. 선이님은 라틴댄스 모임에서도 성별이분법적 문화/관습을 깨기 위해 남몰래 투쟁을 해오셨다고 들었는데요. 후훗
투쟁하려던 것은 아닌데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변화를 일으킨 것 같아요. 살사라는 춤을 추고 있어요. 둘이서 추는 춤인데 한 사람이 leading을 하고 다른 사람이 following을 해요. 워낙 젠더 프리하게 살다 보니 한국 살사계에 리딩은 남자의 역할이고 팔로잉은 여자의 역할이라고 여기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여자인 저도 쉽게 리딩을 배울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여러 동호회에 리더로 등록하는 것을 문의했다가 거절당하고 우선 친분을 쌓은 후에 떼를 써보려고 큰 살사 동호회에 팔뤄로 들어갔어요. 막상 들어가니 살사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살사를 추는 남자라는 뜻의 Salsero와 살사를 추는 여자라는 뜻의 Salsera 라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데 한국에서는 Salsero를 살사를 "리딩하는" 남자, Salsera를 살사를 "팔로잉"하는 여자, 즉 성역할까지 부여한 의미로 사용하더라고요. 저를 지칭하는 용어로 성별뿐만이 아니라 성역할까지 부여된 단어를 사용할 수 없어서 수업 단톡방에 장문의 메시지를 올렸는데 선생님 두 분과 운영진 한 분이 이해해 주셔서 제가 듣는 수업에서는 리더, 팔뤄라는 성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 있었어요. 그때 도와주셨던 운영진분이 올해 동호회 매니저가 되셔서 지금은 공식적으로 성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또 이 선생님들이 다른 동호회에서 하는 초급 수업에 저를 리더로 받아주셔서 살사 리딩도 배우고 있어요. 리딩을 배우고 있는 동호회는 연령대가 많이 높은 분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서 여자도 리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많이 어려웠어요. 성중립적인 용어 사용을 부탁드리기도 어려워요. (이 동호회에서는 리더를 남자라고 하고 팔뤄를 여자라고 해요.) 하지만 어린(?) 제가 뭘 하든 귀여워해 주셔서 리딩을 수월하게 배울 수 있었어요. 리더분들이 홀딩 신청하는 것을 일일이 거절하는 것이 힘들어서 작년 대통령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받은 조끼를 뒤집어서 "남자"라고 써서 입고 갔더니 많은 분이 재미있어 하셨어요. "어머, 너도 남자였지."하면서 선배 팔뤄 분들이 먼저 홀딩 신청을 해주시기도 하더라고요. 이 얘기를 했더니 친구가 "상남자"가 크게 적혀있는 티셔츠를 사줘서 입고 다니는데, 덕분에 인기 리더가 되었어요. 티셔츠가 재미있다고 처음 뵙는 팔뤄분들도 홀딩 신청을 해주세요. 팔로잉을 배우고 있는 동호회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팔로잉도 해보고 싶은 남자분들이나 팔로잉도 리딩도 열심히 하고 있는 저를 기특하게 생각하는 선배 팔뤄 분들이 홀딩 신청을 해주셔서 한, 두 번씩은 리딩을 할 수 있어요. 남자끼리, 여자끼리 또는 남녀가 반전된 역할로 추는 것을 이상하다거나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시선들도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언젠가는 트랜스젠더인 친구들도 마음 놓고 데려올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일상에서 직접 변화를 만들어오시는 실천과 행동력이 인상적이네요!
한편, 전쟁과 학살이 계속되는 2026년입니다. 이제는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드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개인으로서 무력한 감정이 들 때도 있는데요.. 선이님은 이렇게 혼란한 정세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계신가요.
정부나 언론은 기후위기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작년에 홍대입구역 근처 경의선숲길에서 공공재생에너지법 입법청원 캠페인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선전물을 배포했는데 전단지를 나눠주는 줄 알고 지나쳐갔다가 되돌아와서 받아 가신 분들도 많았어요. 예전의 저처럼 혼자라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분들에게 우리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함께할 때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미국의 이란 침공으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통해 ‘사람을 생각하는 환경운동이 뭘까’ 함께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종종 미국의 봉쇄 조치로 인해 자급자족해야 했던 맥락은 지운 채 쿠바의 도시농업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극찬하는 글들을 보면 답답했었어요. 전력난으로 수술실도 열지 못하는 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환경문제만 봐야 하는 걸까요? 화석연료 사용을 제한하고 플라스틱 생산을 감축하기를 원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방식으로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어요. 재생에너지발전으로의 전환도 바라지만 노동자와 지역 주민과 취약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방식으로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공감이 되어요. 환경은 우리 사회와 뗄 수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고, 변화하잖아요. 선이님과 같이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는 접근이 절실한 요즘입니다. 참, 기후정의동맹 후원회원을 결심하신 계기 들어볼 수 있을까요?
플랫폼C와 기후정의동맹에서 함께한 기후정의 책 모임에서 매슈 T. 휴버의 [기후 위기 계급투쟁]을 읽고 기후정의동맹의 활동을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탈성장주의의 화신처럼 살고 있어요. (그래서 플랫폼c의 민희 님이 이 책을 읽을 때 제 걱정을 많이 하신 거예요.) 냉난방도 거의 안 하고 옷도 사지 않고 외국인 유학생들이 귀국하면서 집 앞에 버려두고 가는 옷을 주워 입고 있어요. 집에 있는 가구나 가전도 거의 주워 왔고요. 하지만 저 혼자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들뿐이었던 거지, 이 방식이 환경파괴나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적절한 대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이렇게 없이 사는 저도 매주 많은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했어요.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는다든지 리튬이나 희토류 등 원료 채굴 과정에서 엄청난 환경파괴가 일어난다든지 패스트패션 업계에서 매년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배출한다는 등의 기사를 읽으면 엄청난 회의감과 무기력감을 느꼈어요.
그러다가 작년 5월에 플랫폼c를 따라 태안에 갔다가 공공재생에너지법에 반하게 되었어요. 사람이 모이면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환경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와 지역 커뮤니티까지 함께하는 환경운동이라는 것이 무척 새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엄청난 내향인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재생에너지법 입법 청원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었어요. 그때는 이런 운동을 할 수 있는 게 조직의 힘 덕분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책 모임을 해보니 이런 운동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폭넓게 상상하고 힘든 길을 선택하는 분들과 함께 활동하고 싶어져서 기후정의동맹에 가입했어요.
공공재생에너지법에 ‘반했다’는 말은 처음듣는데, 신선하고 인상깊어요!! 더 들려주세요.
전환되어야 하는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 지역 주민에 대한 고려 없이 환경운동만 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외국에서 환경운동가들이 석유 산업의 화물 노동자와 대치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는데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는 몰랐어요. 이런 활동에 대한 영상만 보고 환경운동을 극단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러다 작년 여름에 플랫폼C를 따라서 531 발전노동자 대행진 집회에 갔다가 공공재생에너지법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뿐만 아니라 석탄발전소 노동자까지 고려하는 운동이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 이후에 플랫폼C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각각 연 공공재생에너지법 세미나에 모두 참여해 이 법안에 대해서 더 공부했어요. 재생에너지발전도 바람이나 태양광처럼 재생되는 자원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일 뿐, 목재펠릿을 태워 전기를 생산하고, 숲을 밀어내고 풍력발전기나 태양광패널을 설치하거나, 해양생물이나 철새의 이동 경로를 가로막는 등의 사례들을 보면서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세미나에서 ‘공공성’ 개념을 배우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숲이나 바다를 되도록 파괴하지 않고, 야생동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지역 주민의 삶을 망가뜨리지 않고, 취약 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지 않는 에너지 전환을 ‘공공성’으로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어요. 물론 공공성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이런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거라고 믿어요.
집회의 어느 장면/순간에 이러한 생각을 느끼셨나요?
같이 '총고용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쳤던 게 기억에 남았어요. 그 구호를 듣고 많이 반성했어요.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과정에서 직업을 잃는 사람이 당연히 있는 건데, 이 분들까지 고려한 운동은 뭘까 생각하지 못했던 게 부끄러웠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게 이렇게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환경운동이었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이미 석탄발전소 노동자와 함께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제도 개선안도 마련해 뒀을 만큼 오래전부터 사람을 생각하는 환경운동에 대해서 고민해 왔다는 것도 놀랍고 좋았어요. 그래서 공공에너지법에 반하게 되었어요.
공공재생에너지법 입법청원 운동도 열심히 했어요. 당시에 플랫폼c 정보방(텔레그램)에 서명운동을 꼭 성공시키고 싶어서 거리에 나가서 캠페인을 하고 싶다고 올렸더니 민희 님이 마침 준비하고 있던 선전전을 같이 하자고 제안해 주셨어요. 플랜트건설노조 집회, 홍대 거리 등 캠페인에 열심히 참여했어요. 개인적으로 유인물을 한 뭉치씩 들고 다니며 나눠주기도 했어요.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면 좀 더 들려주세요!
지하철에서 앉아서 가다가 제 앞에 연로하신 분이 계셔서 양보하려고 일어나는데 빈혈이 와서 주저앉았어요. 어르신께서 당황하셔서 양보 안 해줘도 된다고 손사래를 치시는데,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저도 모르게 ‘그러면 이거 서명 좀 해주시겠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웃음) 제 옆에 앉아 있던 분까지 해서 두 분이 서명해주셨어요.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계속 공공재생에너지법에 대해 생각해서 정신이 없을 때 입법청원 운동을 성공시키고 싶은 욕망이 올라왔나 봐요.
또 살사댄스 같은 소셜댄스가 제 기질과는 맞지 않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추고 있어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는데, 제가 워낙 독특하게 행동하고 키도 큰 편이니, 사람들이 저를 외국인이라 생각하고 영어로 말을 걸길래 저도 영어로 답하며 외국인인 척 했어요. 한 1년 반?(웃음) 매주 토요일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춤을 추러 오는데, 이 사람들을 놓치기 아깝더라고요. 공공재생에너지법 입법청원을 위해 숨겨왔던 국적을 공개하고 50명 정도 서명받았어요. 제가 이만큼 희생했으니 공공재생에너지법을 꼭 제정해야 해요.
공공재생에너지법을 담은 영화나 만화가 있다면, 선이님은 주인공일 거에요!!!ㅎㅎ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으실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아직 공공재생에너지법을 제정하지 못했지만, 이 운동에 참여했던 경험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껴요. 덕분에 이 운동뿐만 아니라 여성운동이나 성소수자인권운동 등 다른 활동을 할 때도, 제가 누구도 배제하거나 희생시키지 않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거예요. 더 많은 분들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도 공공재생에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요.
놀랍고 재밌고 감동적인 일화가 많아 놀람의 연속인 인터뷰였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 나의 삶터에서 고군분투하며 에너지공공성과 기후정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발로 뛰고 있는 수많은 분들을 상상하게 되네요. 공공재생에너지운동의 가능성과 상상력을 더해주시는 선이님, 정말 감사합니다!
선이님이 ‘공공재생에너지법’에 반했던 작년 531 정의로운전환 대행진! 올해도 열린답니다. “2026 정의로운 전환 613 대행진” 경남 창원에서 진행되며, 전국 버스가 준비될 예정입니다. 곧 소식 전하겠습니다. 달력에 체크해주세요 !




